효(孝)는 그저 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효(孝)는 그저 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효(孝)라는 것은 거창해야 할 이유가 없다.
효(孝)는 크기와 상관 없이 그저 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부모라는 것이 자녀의 소소한 마음이나 행복에도 기뻐하는 것이 부모라.

학교에 입학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버이날 처음으로 들고 온 편지와 카네이션에 기뻐하는 것도 부모요.
부모가 준 용돈을 모은 것으로 부모의 생신에 드린 작은 선물에도 미소 짓는 것이 부모요.
첫 취직 후 처음으로 받은 월급으로 사드린 작은 선물이나 옷 하나도 소중해 하는 것이 부모요.
결혼한 자녀가 배우자와 함께 식사 하러 찾아오는 모습을 보며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안도하는 것이 부모이고,
자녀가 출산을 통해 자녀를 갖은 것에도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 부모라.

아흔이 넘은 어미가 칠순이 넘은 딸에게 사탕을 챙겨주는 것이 부모요.
불편한 몸으로 고된 수술과 치료 통증 속에서도 자식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요.
자신의 삶이 고되더라도 자신의 자식 만큼은 그리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요.
자식이 아프지 않다면 자신이 대신 아파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이고,
자신보다 오래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것이 부모라.

따라서 효(孝)란 그런 부모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 곧 효(孝)이고,
스스로 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孝)요.
이따금 찾아뵈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효(孝)요.
찾아 뵌 발 걸음에 밥 한 끼 같이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도 곧 효(孝)라.

하여, 효(孝)라는 것이 굳이 거창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부모님께 작은 웃음과 소소한 행복감을 자주 선사할 수 있는 것으로도 작지만 큰 효(孝)라 할 것이다.

또한, 본디 효(孝)라는 것이 자식 된 자로서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갚는 인간의 도리 중 하나라 하나,
효(孝)를 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롯이 자신 스스로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 겨우 챙겨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기회가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기회가 앞으로는 더 이상 찾아올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되돌릴 수 없는 그 커다란 후회를 줄이기 위함이요.
살아 생전 작게 나마 챙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안도감과 위로를 얻기 위함이라.

이는 결국 부모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도 좋은 일이라.
그렇기에 효(孝)는 크기와 상관 없이 그저 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갚지 못할 큰 은혜와 감사를 적게 나마 보답하는 방법이요.
미래의 나 자신 스스로에게 주는 작고도 큰 위로이다.

내 삶이라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 끝날 때 까지 이고 가야 할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 중 하나 이리라.
따라서 작은 효(孝)를 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이를 피하고자 핑계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음이라.

하여, 효(孝)는 그저 행하면 된다.
크기는 중요치 않다.

효(孝)는 결국 부모와 미래의 나 자신에게 보내는 선물로서 충분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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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과 사(死)의 기로에서 돌아오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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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문득문득 삶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있다. 때로는 바라보는 것에서 나아가 그 문턱에 다가서 있는 자신이 있다. 죽음의 문턱이란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자의 혹은 타의로 절벽에 내몰려지듯 다가선 문턱에선, 선뜻 외면하기 어려운 공포가 맞이해온다. 생이 끝나기 전까지 대면하여 느껴야 할 고통. 나 가고 남겨질 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삶의 흔적 : Life + Traced -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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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태어난 삶. 한 걸음, 두 걸음, 걸음걸이를 시작하고 취학하기 전의 기억은 분명 모든 것이 새롭고 행복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으례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 행복해 보이고, 좋은 시절이라 보일지언정 취학기 이후 어린 녀석의 삶은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고 마냥 행복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앞으로 작성하고자 하는 내용은 과거의 이야기이자, 삶에 대한